마치 수도자가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새겨 놓은 경구(警句)처럼, 달력의 낱장 마다 한 편씩 인쇄된 시구(詩句)가 음성노동인권센터 조광복 노무사의 궤적을 엿보게 만든다.
그에게는 범인(凡人)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욕심을 내려놓은 자’만의 여유가 느껴진다.
조광복 노무사는 오늘도 푸른 새벽 밤샘 어로(漁撈)작업을 마친 작은 고깃배의 고단한 귀항(歸港)길을 비추는 외로운 등대의 등대지기처럼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음성군 노동자의 어두운 앞길을 소리 없이 밝히고 있다.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이룬 눈부신 성과는 조 노무사의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음성군 노동자들의 수호신, 조광복 노무사를 다시 만났다. /편집자 주

최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음성군 내 일부 업체들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노무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음성군 내 원남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식품제조 중견업체 에쓰푸드(주)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 그 예입니다.
최근 에쓰푸드(주)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30여 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 이들의 근무기간까지 모두 인정하여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와 고용불안은 이미 이 사회의 공동체와 안정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쓰푸드(주)의 정규직 전환 조치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기업체의 모범 사례로 평가 받기에 충분합니다.

음성군은 중소영세사업장들의 무분별한 입지로 열악한 고용, 노동환경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임금 관련 상담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등 그동안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진행된 상담 중에는 생계형 상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임금체불과 관련한 상담이 50%를 넘습니다.
이것은 중소영세사업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음성지역의 노동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도산과 같은 경영상 사정으로 체불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법을 준수해야한다는 생각이 뒤처져 있는 형편입니다.

지난해 센터에서는 음성군내 인력회사를 통한 고용 문제를 집중 분석하고 이를 쟁점화시킨 바 있습니다. 직업소개소를 통한 만성적인 고용불안, 저임금, 낮은 처우, 노동법 회피 등 고착화되는 관내 고용현실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최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직업소개소의 자정 노력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단계인력공급으로 물의를 빚은 신세계푸드 역시 불법고용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음성군의 대단위 산업단지 개발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습니다. ‘난개발을 막고 지역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과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으로 난개발을 막는다는 방침은 넌센스’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음성군의 현실을 직시해 보신다면?
입주기업 수로 따지면 2016년 기준으로 산업단지와 농공단지 입주업체는 11.6%에 불과하고 개별입지가 무려 88.4%입니다.
이미 골짜기마다 들어찬 개별입지 업체가 새로 조성되는 산업단지로 이전할 것인가 하는 데는 회의적입니다.
그렇다면 대규모 산업단지는 난개발 개선책이라기보다는 대규모 토목사업과 지속적인 기업체 유치가 주목적일 것입니다.
음성군의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이런 토목사업 위주의 정책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영세사업장들의 음성군 진입을 차단할 수 있는 행정 권한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허가를 내 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착한 일자리,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아닌 ‘묻지마 일자리’만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일자리에 대한 고민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장 일자리에 국한하지 않고 음성군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치밀하면서도 감수성 있는 전략 속에서 일자리 창출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복지 음성’을 내세우는데 사실 ‘번듯한 복지 관련 서비스와 관련 일자리 창출이 있었는가’ 이런 문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일자리를 볼 필요도 있습니다.

음성군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음성군은 최근 청년고용률이 충청북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음성군 청년고용률은 전년대비 10.3% 상승한 50.1%입니다. 특히, 음성군 고용률(15세부터 64세)은 전년대비 2.7%p 상승한 75.2%로 도내 최고 증가율을 보였다는 발표입니다. 일각에서는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일방적인 분석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글쎄요. 양질의 일자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접하지 못해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펙트-체크가 필요해 보이기는 합니다. 함께 고민해 나가야죠.

그동안 수도권, 청주 지역 등에서 다양한 노동문제를 접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민들의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진정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언이 있으시다면?
음성군도 여러 애로점을 갖고 있을 겁니다.
민선 자치단체장 시대에서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을 겁니다. 그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음성’ 하면 딱 떠오르는 것, 이것 때문에 한 번 가볼만한 곳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거의 곳곳에 들어서는 공장과 이주노동자와 반기문 전 총장이 음성의 상징이 돼 버렸어요.
이건 반대로 그만큼 음성을 어필할 수 있고 그것을 일자리와도 연계할만한 의제를 개발하는데 실패했다는 걸 말하지요.
토목 중심의 사고를 지양하고 좀 더 감수성 있는 전략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고병택 기자  marco17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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