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음성읍 읍내4리에 추진됐던 ‘역말 오솔길 조성사업’과 관련, 당초 식재했던 약 3만4천주의 라벤더가 모두 고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이는 가운데, 현재 부지는 라벤더가 생존하기에 불가능한 지역인 것으로 조사됐다.

음성군에 따르면, 2년간 2차례에 걸쳐 식재했던 약 3만4천주 라벤더의 고사 원인은 ‘칡넝쿨의 침투로 인한 라벤더 뿌리 고사’, ‘식재 후 잡초가 라벤더보다 웃자라게 되면서 라벤더 도태’, ‘급경사지 격자블록 몰탈부의 온도 상승에 따른 뿌리 고사’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역말 오솔길 조성사업’은 마을 서쪽 한일중학교를 기점으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비탈길 인근에 라벤더 꽃을 식재해, 라벤더 축제 등을 통해 다양한 주민 소득원 창출과 외부 관광객 유치 등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군 단위 공모 주민참여예산 신청 사업에 선정되면서 추진된 이 사업에는 총 6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지난 2020년 위해덩굴 제거(뿌리제거 및 약제제거), 관수시설 1석, 라벤더 22,864주 식재 명목으로 주민참여예산 3억원이 투입됐다. 이 사업은 2020년 10월 착공되어 이듬해 3월 준공됐다.

이후 2021년도에는 철제계단, 로프난간, 논 슬립, 임목폐수물 처리, 라벤더 11,250주 추가 식재 등을 위해 또 다시 3억원이 투입됐고, 지난해 12월 준공됐다.

계획대로라면 2년간 총 34,114주의 라벤더가 식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준공 된지 6개월 만에 찾아간 ‘역말 오솔길’ 현장에는 식재하기로 되어 있던 라벤더 3만4천주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고, 무성한 잡초, 덩굴로 인해 오솔길의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99%가 고사됐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고사원인과 하자문제 등 책임소재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20년 역말 오솔길 라벤더 식재 현장 모습.

“라벤더가 생존할 수 없는 토양 및 지리적, 물리적 환경”

최근 음성군이 관련 학계 교수, 산림기술사, 조경기술사 등 3명의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얻은 결과, 해당 부지는 라벤더 재배에 적합치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박 모 교수는 “현장의 상황을 볼 때, 열섬현상으로 여름철 식재 고사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탄지의 배수가 좋은 대체부지를 활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산림기술사 서 모씨는 “라벤더는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약간 건조한 곳에 식재해야 하나, 현지 그로스폼 격자블록안에 채워진 몰탈이 낮에 열을 흡수하고, 밤에도 천천히 식어 라벤더의 생육에 좋지 않으며, 칡넝쿨로 인한 고사 확률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고 진단했다.

조경기술사 하 모씨의 의견도 비슷했다.

하 씨는 “격자불록의 온도상승으로 고사 우려가 있다. 잉글리쉬 라벤더는 추위에 강해 월동에 유리한 반면 습기와 더위에 취약하다. 식재 현장의 경우, 칡넝쿨의 침투로 인한 도태가 예상된다. 관리가 용이한 대체부지에 적용한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21년 역말 라벤더 식재공사 모습.

이에 대해, 음성군 관계자는 “라벤더 식재 당시 시방서 및 초화류 식재 기준에 의거 정상적으로 식재가 이루어졌다”며 “다만, 라벤더 생존에 적합한 토양 및 주변환경에 대한 조사가 선결됐어야 했다. 이 분이 미흡했었던 같다”며 이해를 구했다.

‘하자식재’에 대해서는 “당초 주민 공모시 군은 식재를 맡고, 유지관리는 읍내4리 역말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조건으로 사업이 선정됐다. 이 때문에 고사한 라벤더는 하자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현재 부지에 재식재를 하더라도 3~6개월 후 또 다시 고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난감한 표정이다. 

이번에 고사한 라벤더 묘목은 관급자재 형태로 음성군에서 공급하고, 조경업체는 식재공사만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역말 오솔길 현장 모습.

시행사 및 업체측, 라벤더 묘목 2만5천주 추가 제공 ‘협조’

이번 역말 오솔길 라벤더 식재공사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추가 대책 마련을 위한 음성군의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음성군에 따르면 당시 시행사 및 관급자재 납품업체에서 음성군에 자문을 소홀히 한 점, 고사로 인해 문제가 발행한 점 등을 고려해 라벤더 묘목 약 2만5천주를 추가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음성군은 라벤더 식재를 위해 대체부지를 제공하고, 마을에서 자체 식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력한 대체부지는 음성천 인근 약 3,100㎡ 면적의 고수부지로 음성읍에서 매년 양귀비 등 초화류를 식재하는 지역이다. 

음성군은 대체부지가 결정되면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2만5천주, 마을 자체 5천주를 포함한
약 3만주의 라벤더를 식재하고, 이후 유지관리는 읍내4리 마을과 협약을 체결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공증절차를 밟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음성군 관계자는 “라벤더 식재가 불가능한 현 부지는 추후 주민들이 산책로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음성군이 직접 유지관리에 나설 것”이라며 “사업 시행과정에서 철저한 사전점검이 미흡했던 점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대체부지가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애초 마을에서 계획했던 소규모 수공업 형태의 비누, 아이스크림, 오일 추출 등 사업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이상의 추가 예산은 투입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최적의 방안을 계속해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1차 2만2천주 식재 후 현장을 살펴보고 (2차식재는) 멈출 수는 없었는가”는 기자의 질문에는 “당시에는 라벤더가 고사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후 급격히 상황이 악화된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달 역말 오솔길 현장.

이 마을 남상복 이장은 “라벤더를 재배해 본 경험이 없어, 값비싼 시행착오를 겪었다. 앞으로 음성군의 방침에 적극 협조해 나갈 것”이라며 “마을 내에 하우스 1동을 준비해 라벤더를 재배해 계속해서 (대체부지에) 보식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로써, 비탈 사면 1:1~1:0.5의 급경사지에 약 3만4천주의 라벤더를 심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마을주민 소득 창출을 목표로 진행됐던 ‘보라빛 꿈’은 일단 당초 계획을 우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저한 사전조사 없이 시행되는 사업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음성군은 이번 ‘3만4천주의 라벤더 고사’를 반면교사 삼아, 혈세가 허투루 새지 않도록 현장점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7일 역말 오솔길, 일부 덩쿨 및 잡초가 제거된 현장.

고병택 기자  estimes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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