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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 / 맹동> 대기업 명퇴 후 수박으로 ‘대박’…‘이젠 억대 연봉’"나도 할 수 있다" 긍정적 마인드로 농사 도전
'첫째가 체력 둘째가 명확한 방향성 확립' 충고

[편집자주] 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윤원진 기자

 

충북 음성 맹동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양근모씨는 귀농에 가장 중요한 건 농작물 선택과 체력이라고 했다. 사진은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수박 농사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는 양씨./뉴스1

대기업에 다니다가 귀농해 수박 농사를 짓는 양근모씨(60)는 인천에 살던 부모님을 최근 농촌으로 모셨다.

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8월 중순,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 있는 양씨 집에는 나이 든 부모님을 비롯해 외국인 계절근로자까지 다소 부산했다.

집 앞 테이블에 까만 커피와 바삭한 과자를 꺼내 놓은 양씨는 한쪽에 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아버지가 소설가이자 불사조라고 했다.

치매 때문에 없는 말을 지어내서 소설가이고, 지난해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살아남았으니 불사조라는 얘기다.

이 모습을 보던 아내 윤강경씨(58)는 "저이는 평생 일 중독자였다"라며 호호 웃었다.

◇ "나라고 못 하겠나" 수박도 인생도 '선택과 집중'
양씨는 LG전자 미디어사업부에 3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2015년 말 명예퇴직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여름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갈 정도로 바빴다.

일이 많다기보다는 일을 좋아해서 일 중독자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게 양씨의 설명이다. 퇴직 후 경기도 가평에서 잠시 쉬던 그에게 수박 농사 제안이 들어왔다.

양씨는 음성 맹동서 수박농사를 짓는 처 외삼촌 댁을 방문해 하우스 등을 둘러본 뒤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딱 들었다고 했다.

제2 인생에 농사짓는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는데, 말 그대로 순간에 느낌이 왔다고 양씨는 표현했다. 그때가 2016년 4월쯤이었다.

계획이 서자 실행에 속도가 붙었다. 군대 시절 이후 삽자루 한번 잡아본 적 없었는데 다시 잡았다.

수박 줄기에 곁순이 나오면 수시로 따줘야 한다는 걸 배웠다. 수박은 세 줄기로 키우는데 그중에서도 열매 하나만 집중적으로 키워야 상품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직장 시절부터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는 양씨가 수박 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스1

◇ 처외삼촌 조력자 등장 … 이왕이면 3모작
정착하는 데는 농사 선배이자 집안 어른인 처외삼촌 도움이 컸다.

첫해에는 처외삼촌이 쓰던 하우스 4동을 빌려 모종을 사와 심었다. 처외삼촌이 매일 같이 와서 비료 살포 시기, 병충해 예방법 등을 지도했다. 시행착오는 없었고 첫해에 하우스 1동에 600만원, 모두 2400만원 매출이 나왔다.

2016년은 수습 기간이고 2017년부터 본격적 농사를 시작했다. 수박 재배는 중요한 게 땅이고 그 다음이 사람이라는 노하우도 배웠다. 모든 농사가 그렇지만, 수박은 특히 그렇다고 했다.

음성 맹동은 30년 전부터 수박 농사를 지어 오래된 땅이 많았다. 그런 땅은 좋다고 하는 비료를 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양씨는 수박 농사를 짓지 않은 곳에 하우스를 지어 수박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니 수박이 크고 당도도 남달랐다.

수박 농가는 보통 1년에 2모작을 하는데 양씨는 3모작을 하고 있다. 수박·수박·시금치나 수박·수박·멜론 식으로 작물을 변경한다.

3모작을 하려면 1년 내내 하우스에서 살아야 한다. 처음에는 하우스 안에 들어갔는데 더위가 어지러울 정도로 심하고, 허리도 끊어질 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체질화가 됐다는 게 양씨 자랑이다.

양씨는 육체적 노동을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 다음이 상인들과 가격 협상하는 건데 지금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하우스를 늘린 게 이제 30동이나 됐다. 현재 그의 순수익은 1억원이 넘는다.

◇ 귀농도 잘하면 돈쭐 … 첫째가 체력, 둘째가 방향
양씨는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귀농해서 밥 먹고 살기 어렵다고 봤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는 무슨 작목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무슨 작목을 재배해 어떻게 수익을 낼지 분명하게 생각하지 않아 경제적 이익을 낼 수 없다는 말이다.

반면 귀농도 잘하면 수익이 된다는 게 양씨 생각이다. 그는 첫 번째로 체력, 두 번째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화점식으로 수십 종 재배해봐야 수익이 안 된다고 했다.

그 다음이 체력이다. 양씨는 100세 시대에 앞으로 40년은 더 살아야 한다며 체력이 있어야 농사도 잘 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직장 다닐 때 하루 1시간씩 운동하고 주말이면 산악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100㎞ 이내는 항상 자전거 타고 다녔다는 게 양씨 자랑이다.

양씨는 수박 농사지을 때도 자전거 탄다고 생각하니 힘든 것도 잊었다고 했다. 농사에도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귀농하니 돈 버는 재미와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됐다고 했다. 직장 다닐 때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벌었는데, 농사짓고 깨달은 게 많다고 했다.

양씨는 몇 년 전부터 충주준법지원센터에 매년 쌀도 기부하고 있다. 그는 내가 직접 재배한 쌀이라 더 의미 있다고 했다.

그는 농장 이름도 '음성무지개농장'으로 정했다. 모든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는 뜻이다./뉴스1

귀농 후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됐다는 양근모·윤강경 부부./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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