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의 거실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어머니 화분에는 이번 설에도 화창하게 꽃을 피워 장관을 이뤘다.
인사를 하러 온 사촌들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이 추위에 활짝 핀 꽃무리에 감탄들을 하였다. 나 또한 거실 가득 환하게 피어있는 진보라 색 게발선인장 꽃에 취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게발선인장은 겨울에 실내에서 쉽게 피는 꽃이라지만 어머니는 이 많은 화분들을 설에 맞춰 꽃을 피우려고 정성을 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물으면 같은 레퍼토리를 들려줄 것이다. "너의 아버지가 돌아 가신던 해에 어디서 선인장 한쪽을 얻어 왔었느니... ..." 작은아이 임신 중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 올해로 벌써 22주년 기일을 맞는다.
어머니는 22년을 게발선인장에 공을 들이셨고 해마다 번성해서 이제는 화분들이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는 이 추위에 꽃을 피워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핑계를 만드시는 것 같다.
예쁘다는 사람이 있으면 선뜻 분양을 해주신다. 나도 예쁘다 했더니 크고 튼실한 선인장을 지난 설에 분양 받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화분은 잎과 줄기가 빼빼 말라 볼품없어져 버렸다.
화분의 상태를 들으신 어머니는 아무리 선인장이라고 하지만 잊어버릴 만 하면 물을 준다는 건 아니라셨다. 화분을 들여다보다 흙이 말라 있으면?목이 마르구나 생각해야 한다셨다. 가끔은 영양제를 주기도 하시고 어머니가 드시는 비타민 음료를? 나눠 주기도 한다고 했다.

시아버지 기일이 추석날 저녁이다. 무녀독남인 남편이 혼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싫다며 어떻게 가야 혼자 쓸쓸히 제사를 지내지 않을까 살아생전 늘 말씀하셨다는 시아버지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추석 다음날 돌아가셨다. 그래서 명절에 고향에 내려오는 사촌 아주버님들과 함께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명절 때면 유난히 커지는 어머님의 한숨 소리가 싫었다. 유독 금슬이 좋으셨던 두 분이셨기에 어머님의 상심을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 한숨을 쉬면 복 나간대요 어머니” 하며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습관을 아주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셨다. 그런데 이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내 나이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내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멀리 살림을 살고 젊은 어머니는 많이 외로우셨을 것이다.
그러니 한숨이 습관이 되셨을 것이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인장 화분에 그리 공을 들였으리라.
어머니에게 화분은 아버지와의 긴 대화였으며 슬픔의 치유제가 아니었나 싶다.긴 시간을 달려 그때의 어머님 나이가 되어 보니 배우자를 잃은 큰 상심에 당신 혼자의 슬픔을 이겨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며, 결코 이 나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초월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어머니의 한숨은 속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었음을 또한 알겠다.
내일 여행을 간다. 말라 비틀어져서 살리기를 포기하고 베란다에 방치했던 선인장 화분을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물과 아이가 먹다가 남긴 비타민 음료를 화분에 듬뿍 주면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진한 보라빛 선인장 꽃이 반겨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우리집에도 선인장 꽃이 활짝 피었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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