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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 인권을 가로막는 장벽 ‘두려움’음성노동인권센터 박윤준 상담실장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윤준 상담실장.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그러니까 산업혁명 이후 분업화된 대량생산 제조공장들이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을 그 시기에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이 발간되었다.

그때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게으를 권리’라니?”라면서 말이다.

어떤 공장 관리자는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할 생각은 안 하고 무책임하게 게을러서야 되겠나?”며 손가락질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이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 ‘노동인권’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인권’은 ‘직장에서 사람답게 존중을 받으며 일할 권리’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며 노예나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모든 활동이 노동인권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이 오로지 회사 이윤 창출의 도구로 취급받는다면, 인권침해들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을 이윤 창출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 행세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면을 들춰내는 개념이다.

130년이 지난 2019년 대한민국 충북 음성의 현실은 어떠할까? 음성군에는 금왕․소이․원남․맹동․대소산업단지를 포함해 21개의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거나 조성 중에 있다.

대부분 제조공장이고 석유화학, 금속기계, 식품음료 순으로 엄청난 양의 제품들이 이곳 음성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답게 일하지 못해 노동인권센터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참 많다. 임금체불, 부당해고, 산업재해 그리고 각종 인권침해 사례들이 노동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열악한 음성군 노동인권 침해 사례

A중공업은 공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시키고 있다. 동종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되고, 주문량을 맞추려면 노동자들도 어쩔 수 없이 몸 상하는 걸 감내하고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새벽 출근하기 전 화장실에서 쓰러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 다친 이후 그는 지능이 떨어져 말이 어눌해졌다. 산업재해를 신청하려고 했지만 보상을 받을 자격에 해당하지 않았다.

A중공업이 생산 공정을 잘게 찢어놓은 다음 모두 하청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청회사들은 직원 한 두명을 데리고 일을 하는 소사장제였다.

쓰러진 사람은 공교롭게도 하청업체의‘사장’이었다. 그러나 말이 사장이지 실제로는 원청회사인 A중공업의 지시에 따르는‘노동자’였다.

작년 센터의 제보에 의해 지역에 알려진 B회사는 CCTV로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직원들의 손발을 옥죄였다.

B회사 공장장은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에 연동이 된 CCTV를 수시로 관찰하면서 쉬고 있는 직원의 모습을 캡쳐해서 직원들이 접속해있는 채팅방에 올리면서 나무랐다. 중간 관리자들은 이중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했다.

공장장이 시도 때도 없이 중간 관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직원들의 근로행태를 지적하고, 통제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센터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공장장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어 공장장은 벌금형을 받고 B회사를 떠났다.

 

인간다움을 통제받지 않을 권리

위 두 사례는 도저히 ‘게으를 수 없는’음성지역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게으르지 못할망정 몸과 생각까지 통제당하는 반인권적인 일상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이때 “집에 갈 시간이 되었으니 나는 집에 가겠다.” 라거나 “이딴식으로 일 시킬거면 나는 일을 하지 않겠다.”라고 사장에게 얘기하면 어떤 장면으로 넘어갈까.

그때 상상이 되는 장면이 곧 내가 가진 두려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들이 벽을 만들어 인권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어쩜 그렇게 뻔뻔하냐”, “무엇을 믿고 그렇게 당당하냐”, “싸가지가 없다” 이 말들은 필자가 그 두려움에 휘말리지 않고 나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통제하려는 이들에게 인간다움을 통제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했을 때 들을 수 있었던 반응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센터에 와서 상담을 받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분노하는 사장으로부터 듣는 말들이기도 하다.

사업주들이 직원들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만 여기고 통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때,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뻔뻔’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때 음성지역의 노동인권은 한발짝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쌓아올린 장벽은 기어이 무너질 것이다.

음성타임즈  webmaster@e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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