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대가 있었다. 기자로서의 첫 발을 내디디며 주입된 언론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사회 계몽이다. 심훈의 ‘상록수’ 시대가 한참 지났음에도 뒤처진 제도를 혁신하고 아둔한 민중을 일깨울 알량한 사명의식이다. 이른바 그시절 지식층인 언론계 내부자들은 이를 당연한 소명쯤 여겼던 것 같다.

야근하다 보면 독자 전화가 유독 밀려오던 밤 시간대도 있었다. 술자리 언쟁이 붙었을 때 그 답을 편집국에 구하는 일이 잦았다. 수화기 건너 “기자가 내 말이 맞다 하잖아”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심판관인 양 뿌듯했다. 바쁠 때 건성건성한 답변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외국물 좀 먹은 탓에 신문에 게재되던 미국 4컷 만화의 지문을 번역하는 일은 입사초부터 내게 떨어졌다. 자매 영자지 원어민 프루프리더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지만 온갖 이디엄에 생활 밀착영어를 얄팍한 실력에 무슨 배짱으로 옮겼는지 참 뻔뻔했다. 그 만화를 통해 미국 생활상을 엿보고 영어를 학습한다던 애독자들은 왜 그리도 많았던지… 개중에는 여주인공 생일에 맞춰 카드를 보내고 매년 꽃다발을 보내던 열혈독자도 있었다. 언론은 외국 나가기도 흔치 않던 시절 해외 소식을 접하던 창구이기도 했다.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거창한 용어도 자연스레 쓰이고 받아들여졌다. 대한민국의 새벽은 신문으로 시작하고 하루는 방송의 애국가로 마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언론이 처한 현실은 너무 쓰리다. '기레기' 소리가 난무하고 양진영에 갈려 ‘가짜뉴스’ 시비의 한가운데에 있다. 비판이 본질인 언론이 일방의 욕을 먹는 것은 업이지만 작금 저변에 깔린 경시(輕視)와 모멸(侮蔑)은 존재의 의미마저 흔든다.

내부자들은 다 안다.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결코 남 탓할 수 없는 자업자득이다.
부끄럽지만 까발리자면 지나친 자만은 교만으로 흐르고 정도를 넘어선 단정이 ‘괴물’을 만들어냈다. 감시자에 머물러야 할 언론은 어느덧 선악을 가르고 단죄할 ‘전능자’ 코스프레에 젖어 있다. 사설, 칼럼에는 저마다 ‘쓰까’ 대신 ‘해라’ ‘이 길뿐’이라는 강요형 어미가 차고 넘친다. 한국 언론의 본성은 꼬일 대로 꼬였다.

결국 자기가 보고픈 것만 보고 말하는 반쪽언론은 사회도 두 동강, 세 동강 내고 그래서 갈등구조만 키우는 악의 한 축이라는 비난에 휘말렸다. 정치· 경제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 전반을 다루는 속성상 그 폐해도 다방면이다.

대한민국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마침 적폐청산의 호기에 섰다. 우리 언론으로서는 나락에 빠져들 것인가, 정도로 나설 것인가 환골탈태의 절호의 기회다. 방법은 간단하다. 초심, ‘교과서적 언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팩트에 바탕한 날카로운 지적질로 감시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자. 작금의 사태에서 우리는 사실이 강력한 무기이자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지 않았는가.

또한 소외된 곳곳의 약자를 비추고 따스한 주변의 이야기들을 찾아 조명하는 '빛'의 면을 더한다면 갈등과 분열의 상처도 보다듬는 언론의 순기능도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해본다.

사실 앞에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팩-토리(fact+tory)를 시작한다. 팩-토리는 팩트와 스토리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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