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2016.12.19/뉴스1 © News1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은 주방에 딸린 식탁에 함께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격의 없는 지인들을 뜻한다. 영미권 언론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 주지사에 대한 비공식 사설(私設) 고문단을 지칭한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다. 최초의 서부 출신 대통령으로, 일반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앤드루 잭슨 미국 제 7대 대통령(1829~1837)의 정적들이 급진파였던 잭슨 대통령의 측근들을 조롱하며 처음 사용했다.

잭슨 대통령은 워싱턴 기성 정치인들을 불신했고, 이로 인해 부유한 상류 귀족들이 판을 치던 기성 정치권이 예상 못한 의외의 인물을 발탁하다 보니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특히, 집으로 각료들을 초청해 회의를 열다 보니 키친 캐비닛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후에 키친 캐비닛이란 말에 조롱의 의미는 약화됐다. 현재의 대통령이 자문하는 비공식 고문단을 통칭한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GM과 JP모간 등 기업 전현직 임직원으로 된 키친 캐비닛을 꾸렸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에 보도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 최순실씨는 키친 캐비닛으로 볼 수 있을까. 앞뒤 맥락 다 자르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조언을 했다는 의미로만 보면 최씨는 키친 캐비닛으로 보는 것이 자명할 것이다. 축자적으로도 그렇다. 청와대에서 자주 식사도 했고, 국정 운영도 좌지우지하지 않았나.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서방 언론에서 최씨를 키친 캐비닛으로 칭한 곳이 한군데도 없다는 점이다. 타문화권에 관한 기사를 작성할 때 자국에 친숙한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외신의 일반적 행태와 다르다. 최씨의 그간 행적이 키친 캐비닛에 어울리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 아닐까. 

최씨에 대한 주요 외신의 수식어와 설명을 살펴보자.

AFP통신은 19일 최씨에 대해 "한국에서 한 세대에서 최대의 정치 위기를 촉발한 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여성"라고 했다. 또 "현재 탄핵으로 직무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에게 휘두른 영향력으로 인해 '여자 라스푸틴'으로 불린다"고 표현했다.

그리고리 라스푸틴(1869~1916)은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돌연 수도승을 자처한 인물로,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총애를 얻은 뒤 이를 바탕으로 내치와 외교 등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리사욕을 챙겼다.

로이터통신은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촉발한 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의 친구"라고 썼다. 이전 기사에서는 "대기업으로 하여금 대통령 정책을 지지하는 비영리 재단에 기부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돼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식 직함이 없는 오랜 친구"라고 지적했다. 또 박 대통령은 최씨에게 "기밀 서류를 보게 하고 정책 결정에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썼다. AP통신은 "구속수감돼 있는 친구" "40년된 친구"라고 지적했다.

미국 NBC뉴스는 "구속돼 있는 친구(confidante)" "박 대통령의 멘토였던 사이비 종교(cult) 지도자 최태민의 딸"이라고 썼다. 또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에 비서실장을 지냈다"고 지적했다.

영국 공영 BBC는 "대기업으로 하여금 대통령 정책을 지지하는 비영리 재단에 기부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돼 있는 오랜 친구 최순실과 공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씨는 박 대통령과 "오랜 기간 가까운 사이였다"며 "핸드백 구매에서 국정 운영까지 대통령의 결정에 지시했거나 혹은 최소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영국 IB타임스는 "영적 지도자(spiritual guide)"라고 표현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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