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부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간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곧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위의 글은 우리에게는 서산대사의 글로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 저자에 대해선 또 다른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구 선생이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걱정하며 북한을 향해 1948년 38선을 넘으며 위의 시를 읊었다는 말도 전해지며 서예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이 시를 쓸 정도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한시다.
저자에 대해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 조선 후가의 문인 이양연(李亮淵)이란 주장이 있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에 의하면 서산대사의 문집 청허집에는 위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첫 연의 踏이 穿 자로, 3연의 日이 朝 자로, 4연의 作이 爲 자로 바뀌지만 내용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직장에서는 물론 학교에도 교장이 없고 집안에도 가장이 없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어른이 없는 사회, 어른이 없는 가정은 혼란과 혼돈만 야기되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인간 사회가 어지럽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어른이 있다고 해서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없는 집단은 선장이 없는 배와 같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다. 
사회가 변한 까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어른이 어른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가 그 첫 번째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확보했다면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어른의 정체성은 먼저 자신이 속해 있는 그 집단을 생각하고 돌보는 지혜와 결단 그리고 정신이 뚜렷하게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낱 이름이나 얻고 이익이나 취하려고 어른의 자리에 앉는다면 그런 어른이 다스리는 집단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맹자의 말대로 황제가 자기만을 알고 정치를 한다면 그 아래 제후도 자기만을 위해 일을 할 것이고 제후가 자신의 이익만을 알고 정치를 한다면 다른 사대부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결국 모든 서민까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어떻게 나라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 맹자의 양혜왕 편에 나온다.
그러므로 어른의 위치가 중요하다. 
사회에서는 직위를 가진 사람이, 학교에서는 선생이, 가정에서는 부모가 각자 그 자신이 가야할 길을 분명히 알고 당당하게 정의를 실천하며 간다면 그런 어른이 있는 집단은 그의 뒤를 따라 바르게 갈 수 있다. 
위의 시에서는 이것을 시의 첫 연에 담담하게 그려 놓았다. 눈 내리는 들판에서 함부로 이리 저리 걷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걸어간 눈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세상이라면 굳이 남을 의식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내 편한 대로 걷고 뛰고 장난질을 치며 걸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그럴 수 없다. 나와 너가 모여 우리가 되었고 우리가 모여 사회를 이루었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것을 보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거울이 되고 좌표가 된다. 그래서 공자도 자식 교육은 남이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본 자식으로부터 존경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르게 몸가짐과 정신을 갖고 살아왔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가장은 가장으로서, 상사는 상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고 행동 할 때 그 집단의 미래가 담보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의 전래 속담과도 일치하는 말이다. 앞선 사람은 뒤에 따라 오는 사람까지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이 그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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