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 12일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꽃동네 설립으로 이어진다.(자료제공=꽃동네)

최귀동 베드로 할아버지 영전에 드립니다

어두운 밤
은은한 빛이 되어
외로운 나그네의 벗으로
흐르던 별 하나

오늘
조용히 멎음은 결코 헛됨이 아니옵니다
응달진 너와 나의 가슴에
빛나는 샛별로
더욱 찬란히 저 드높은 곳에서
모든이의 빛이 되기 위함입니다

걸인이었기에
걸인들을 사랑했고
가난했기에 가난한 자들의 아픔에
동참했던 외로운 자들의 선구자로

길가에 짓밟힌 질경이처럼
수많은 발자욱의 아픔을 딛고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살아온
최귀동 할아버지

어느날
손에 든 사탕 한 알
그것 반만 주세요 하면
자 다 먹어 난 괜찮아 하시던
넉넉한 마음이 좋아서 자주 손을 내밀 때 마다

당신의 하얀 미소를

안으로 오그라진 손을 밖으로 펼 수 있게 한
사랑의 힘은
모두의 마음을 부끄럽게 하고
회심의 눈물로 가슴을 여는 
장미빛 보다 더 짙은 향기로
온세상에 따뜻한 사랑의 불씨가 되어
피어오를 것입니다

누가 죽음을 슬프다고 노래 했던가요
오늘 나자로 되어
아버지의 품에 안긴 복된 최귀동 할아버지께
사탕 한 알이 아닌
아버지의 축복을 내려주십사
조용히 비는 마음으로 기도 드립니다

최귀동 베드로 할아버지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1990년 1월 꽃동네 가족 드림

=꽃동네 최귀동 할아버지 묘지 비석에 새겨진 글=

최귀동 할아버지 선종 33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고 있는 꽃동네 오웅진 신부를 비롯 수도자와 가족들./사진제공=꽃동네

최귀동 할아버지 선종 33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고 있는 꽃동네 수도자와 가족들./사진제공=꽃동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6년 9월 12일 당시 33세의 젊은 사제였던 저는 저녁노을에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 그 분의 삶을 보고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는 말씀을 깨닫습니다"

"저는 지난날의 삶을 통해, 주님 안에서 살면 '나의 삶은 즐겁다, 나의 고통은 즐겁고, 나의 죽음은 영광이다'라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 오웅진 신부 강론 중

지난달 4일은 故최귀동 할아버지 선종 3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사람은 남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며 허름한 옷에 걸망 하나로 수많은 이들을 살려 내려 했던 ‘성자’였다

기일을 맞아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음성꽃동네 입구에는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를 비롯 수도자, 가족들이 모여 할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며 생전의 그를 기억했다.

이날 오웅진 신부는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할아버지는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일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며 “저에게 ‘억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해 주셨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꽃동네 최귀동 할아버지 묘지 비석/사진제공=꽃동네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 신부와의 인연은 오 신부가 1976년 무극성당(현 금왕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한지 며칠 후 성당 앞길에서 동냥밥을 얻어 움막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 모습을 발견하고 그 뒤를 따라 가며 시작됐다. 

할아버지가 동냥밥을 얻어 돌아간 용담산 밑 움막에는 당시 18명의 걸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장애인, 중환자 등 동냥조차 못하는 걸인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없이 움막 안에서 동냥해온 밥을 그들에게 먹여주고 있는 모습을 본 오웅진 신부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자신도 걸인이고 몸도 성하지 않은 분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하며 성당으로 돌아온 오 신부가 밤새워 기도하며 깨달은 말이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었다.

추모를 마친 오웅진 신부를 비롯 수도자, 가족들의 '사랑합니다'/사진제공=꽃동네.

이후 오 신부는 주머닛돈을 털어 시멘트 한 포를 사고 냇가에서 모래를 퍼와 집을 짓기 시작했다. 꽃동네가 시작된 것이다.   

이날 기일을 맞아 묘소 앞에 모인 오 신부와 수도자, 가족들은 묘지 비석에 새겨진 ‘최귀동 할아버지 영전에 드립니다’라는 시를 읽으며 할아버지를 추억했다.

성자(聖者)가 된 걸인(乞人) 최귀동, 그는 자신의 안구를 26세 청년에게 기증한 채, 지상에서 사랑의 삶을 마치고 지난 1990년 1월 4일 천국에 올랐다.

고인은 임종 직전 “인명은 재천이야”라는 짧은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꽃동네 최귀동 할아버지 묘소 위 전경/사진제공=꽃동네.

꽃동네 입구에 세워진 최귀동 할아버지 동상/사진제공=꽃동네.

한편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을 실천했던 故최귀동 할아버지의 인류애 정신은 아직 진행 중이다.

꽃동네는 지난 47년의 역사 동안 중국,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를 거쳐 북미, 중미,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등 18개국에 나가 가난의 영성을 실천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음성군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최귀동 할아버지의 숭고한 삶을 되새기기 위해 ‘음성품바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품바축제는 현재 4년 연속 문화관광체육부의 ‘문화관광축제’, 8년 연속 ‘충청북도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는 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사진제공=꽃동네

고병택 기자  webmaster@e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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