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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용 칼럼/ 난지도의 변신문민용 기쁜소식음성교회 담임목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번쯤은 ‘난지도’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난지도’란 ‘그윽한 향기가 나는 난초와 지초가 가득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난지도는 한강 어귀의 낮은 평지 이자 갈대 숲이 어우러진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실린 난지도는 꽃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뜻의 ‘중초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많다 하여 ‘꽃 섬’, 오리가 앉은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오리 섬’으로 불렸다. 난지도라는 섬은 그렇게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섬은 우리의 뇌리에 ‘쓰레기 무덤’으로 바뀌어버렸다.

1970년대 한국의 산업 발전으로 인해 서울의 인구급증으로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쓰레기 매립지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새로운 매립지로 난지도가 선택되었다. 

약 17년간, 난지도에 얹힌 쓰레기는 총 9,200만 톤. 해발 200m 높이의 거대한 산이 되었다. 

난지도가 정말 놀랍고 유명한 것은 아름다웠던 난지도가 쓰레기 무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 쓰레기 무덤이 다시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 무덤을 보면서 누군가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고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할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난지도를 놀랍게 재탄생 시켰다.

사람들은 쓰레기 버리는 일을 중지하고 쓰레기 산의 기초를 단단히 다지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오랜 시간이 흘러 쓰레기 산 전부를 흙으로 덮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를 심고 공원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무들은 자라서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었다. 그렇게 난지도는 2002년 생태 공원을 기조로 새 단장에 성공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생태 공원으로 성공적인 변신이 이루어진 것은 세계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난지도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자연이 다시 소생한다는 점이다.

곧고 높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난지도를 푸르게 물들이고 있으며, 코스모스가 드넓게 피어 있고 그 외에도 갖가지의 꽃들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매립된 쓰레기에서 나오는 침출수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던 작은 시내 난지천도 변화하여, 여전히 침출수는 나오고 있지만 그 침출수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열에너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함께하고 있다.

난지도로 자연이 돌아오고, 사람들도 돌아왔다. 더 이상 난지도에 발을 딛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이 돌아와 즐거운 시간을 난지도에서 보낸다. 

똑같은 가치를 가진 난지도이지만 그곳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하던 화가가 있었다. 작품에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품을 쓰레기통에 네 팽겨둔 채 화실 구석에 앉아 오랜 시간 비탄과 실의에 잠겨 있곤 했다. 

그가 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가 버렸던 그림을 다시 정성스럽게 펴서 말없이 이젤 위에 올려두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화가의 아내였다. 그녀는 그의 꿈을 다시 꺼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아내의 배려로 다시 꿈을 기억하여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완성 시킨 작품이 ‘전원 풍경’,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세기의 작품이다.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화가의 이름은 ‘폴 세잔느’로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20세기 회화의 참다운 발견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무미건조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로 끌어올려 전 세계의 미술관을 바꾸어 놓는 일을 했다.

이 위대한 화가의 탄생은 쓰레기로 치부해버린 그의 그림을 작품으로 보았던 아내로 인한 것이었다.

다이아몬드와 흑연, 그리고 숯은 그 결정을 계속 쪼개다 보면 탄소라는 하나의 원자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똑같은 탄소들이 모여 어떤 것은 아름다움과 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하나는 시커먼 숯검댕이가 된다. 그 이유는 탄소 원자의 완전히 다른 배열과 결합 방식에 있다.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라는 원소,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한 번의 인생이 있다. 

음성타임즈  webmaster@e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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