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파죽지세로 파리로 진격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9월 초 SNS를 통해 “대한민국의 혁명적 변화를 위해 저에게 요구되는 일을 하겠다”며 대선출마 뜻을 밝혔을 때 그의 지지도(리얼미터 조사 기준)는 3%대였다. 전국적 지명도가 없는 기초자치단체장으로선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으나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확장성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믿는 ‘손가락혁명군(SNS 지지자)의 작당모의’ 덕분인지 10월엔 5%대로 뛰며 박원순 서울시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깨를 나란히 했다. 거기까지인 듯했다.     

그를 띄운 것은 그가 ‘나라를 망쳐먹고 국민의 생명을 저버린 권력’이라고 맹비난하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언론이 뚜껑을 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통령이 어설픈 담화로 대응한 게 계기였다. 그는 담화 다음날인 26일 누구보다 먼저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고 이후 탄핵, 구속으로 수위를 높여가며 활활 타오른 촛불민심을 대변했다. 그 결과 그의 지지도는 11월 중순 10%대로 급상승하며 박원순은 물론 안철수마저 멀리 따돌렸고, 마침내 최근 조사에선 20%에 근접하며 문재인 반기문을 위협하는 '빅3'로 자리매김했다. 불과 두달 사이에 드라마처럼 일어난 일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머슴론’으로 자신의 지지세를 설명한다. 지금껏 정치권은 말로는 국민을 대변하고 봉사한다면서 실제로는 국민을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가짜 민주주의를 해왔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은 네트워크화된 집단지성으로 되레 정치를 강압하며 주인인 국민의 뜻을 대리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머슴을 찾고 있다, 최선은커녕 차악도 안되는 선택만을 강요하는 정치에 화가 난 국민들이 ‘주인과 머슴’으로 풀어간 자신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의 인기에 대한 3자적 평가는 어떨까. 그의 정치역정을 잘 모르거나 최근 온라인에 떠도는 형수와의 막말 녹취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의 얘기는 박하다. 하야 탄핵 구속 등 과격하고 선동적인 '사이다 언행'으로 촛불민심의 속을 확 뚫어줘 잠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지만, 광장의 흥분이 가라않으면 이 거품은 대부분 꺼질 신기루라는 것이다. 또 그의 지지도의 절반 이상은 통진당 세력과 정의당 지지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며 그의 자질과 품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대다수도 대중의 일시적 흥분이 만든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무상 3종 시리즈(교복 산후조리원 청년수당)로 유명세를 치르며 중앙정부와 싸워온 그이기에 보수진영의 평가는 더욱 거칠고 때론 모욕적이다.   

그런 측면이 있을 것이다. 분명 촛불 탄핵정국은 '변방 수령'에 불과한 이 시장이 중앙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로써 주요 미디어의 눈길을 끌어 전국적 인물로 부상하는 모멘텀이 됐다. 그러나 기회와 모멘텀이 그냥 오는 것은 아니다. 기회를 포착하고 감당할 비전과 내공, 꿈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이 시장이 지난 10월 하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지지그룹 ‘손가락혁명군’과 가진 토크콘서트는 시사하는 바 많다. 3000여명의 국내외 지지자들이 이 모인 이 자리에서 그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다수 대중이 소수 기득권층에 지는 것은 그들이 만든 종북·포퓰리즘 등의 프레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내가 앞장서 두려움을 깨고 국민혁명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 시장이 탄핵정국의 최대 수혜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는 윤여준의 평가처럼 그가 ‘준비된 선동가’였고,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부족한 게 뭔지를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또 김종인의 말처럼 그가 민심을 잘 포착해 일관된 얘기를 간결하고 직설적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그는 연설 때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만의 차이잉원,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등을 언급하며 자신이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다는 자신감을 더욱 키워가는 눈치다. 정작 본인은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특히 그는 보수 진영이 자신의 복지구상에 포퓰리즘이란 딱지를 붙이려는 것에 대해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조항을 들어 강하게 반박한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안동에서 초등학교만 나온 뒤 성남공단 노동자로 일하다 뒤늦게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이수하고 중앙대 법대를 거쳐 변호사가 된 이후 시민운동을 하다 인구 100만명의 성남시정을 맡아 이름을 알렸지만 그는 중앙정치에 관한 한 아웃사이더이고 비주류다. 중앙미디어에 노출될 기회도 극히 제한적이다. 그가 중앙정부와 각을 세우는 노이즈 마케팅을 마다하지 않고 일치감치 SNS의 효용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리고 그것이 통하고 있다. 여야의 이념 다툼이나 보혁의 진영싸움에 식상한 대중에게 그는 공정 평등 정의 생명 평화 등의 가치를 방금 잡은 생선회처럼 들고 다가간다. "나에게 정치는 공정하고 꿈이있는 세상을 만드는, 그래서 '국민 중심성'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필자가 그를 직접 본 것은 9월 하순 재야 언론 4단체가 주최한 대선주자 초청 토론회에서였다. 직전에 뉴스1이 그와 가진 인터뷰 기사(☞이재명 시장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하고 싶다)를 보다 '이 사람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육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3%의 지지율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그는 낮은 지지율을 쑥스러워했지만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다. 겉으론 유연한 것 같지만 독한 구석도 느껴졌다. 흙수저 출신의 야당 정치인으로 분당이 포함된 성남시장을 연임하고 있다는 자신감, SNS와 입소문에 능한 '손가락혁명군'의 열성적 지지, 탄탄한 법률적 지식과 전투적 행정경험 등등이 배경인 듯했다. 그래도 내공과 잠재력을 인정할 정도였지, 이렇게 빨리 일을 낼지는 몰랐다.    

그는 자신의 한계도 잘 안다. 쉽고 간결한 어법을 즐기다보니 가천대 비하 혹은 '머슴팀 연대' 발언 등의 설화가 잦고,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적의와 막말로 리더의 품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이 시장 측은 “벼룩이 소처럼 걸으면 눈에도 띄지 않으니 좀 오버한 면이 있지만, 소가 벼룩처럼 뛰면 미친 소 취급받는 것도 잘 안다”며 앞으로 체급에 맞는 이미지 관리에 신경쓸 태세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같은 맥락에서 그의 싸움닭 기질과 가벼운 처신도 종종 지적된다. 성남 시정 차원에선 쉽고 간결한 해법이 통해도, 복잡한 이해관계와 다층적 세력이 충돌하는 중앙정치에선 쾌도난마식 해법이 되레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사의 경험을 들어 정치리더의 불우한 성장배경과 그에 따른 편견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치 풍운아이자 이단아인 이재명의 길은 이제부터 더 멀고도 험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패와 관계없이 지금 여기서 이재명 신드롬이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사이다나 콜라가 시원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속의 탄산 성분때문이다. 그 탄산은 치아와 위 등 건강에 해로운 물질로 알려져 있다. 중독되면 몸을 망친다는 얘기다. 쉽고 간결하면 틀릴 확률도 높아진다. 독과 약을 함께 지닌 이재명을 제대로 잘 읽어야 이 시대 리더십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뉴스1 주필>   
 

음성타임즈  webmaster@estimes.co.kr

<저작권자 © 음성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