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 지 어언 스무날,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내서 닭 그림을 그리려고 민화도구를 펼치면서 네 생각을 했단다.

정유년 새해, 닭의 해를 맞아 새벽을 알리는 기상을 닮고 싶었다. 특별히 겸재 정선의 어미닭과 병아리가 평화롭게 걷고 있는 그림을 보며 오랜 날 너와 지냈던 사랑의 그 동안 펼쳐본다.

오원 장승업의 계도를 보니 수탉의 위엄이 가득하고, 닭과 맨드라미 그림 또한 붉은 벼슬과 날렵한 꼬리는 기품이 넘치는 게 자못 고고한 기상이다.

그 위에 덧붙여 그린 맨드라미도 붉은 수탉의 기상과 어지간하구나. 닭의 벼슬은 출세를 뜻하며 맨드라미 또한 모양이 닭 벼슬과 같아서 계관화라고 했다니 그림도 안목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출세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닭의 벼슬과 또 그 벼슬과 흡사한 맨드라미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기원했을 옛 사람의 모습이 소박한 정경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렇게 수많은 그림을 넘기던 중인데 문득 작자 미상이라고 되어 있는 그림이 한 점 눈에 들어왔다. 모퉁이 국화꽃 아래에서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고 있더구나. 수탉은 또 바위 위에 올라가 어미닭과 병아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는 순간 ‘바로 이 그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수탉이 나무 위에 올라가 온 가족을 지키는 모습이 애틋한 사랑을 넘어 엄숙한 분위기까지 묻어나왔단다.

그것을 보고 딸아, 문득 네 생각이 간절해졌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다치지 않고 넘어지지 않도록 아빠와 함께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뭔가 더 해 주지 못한 것 같은 미진한 마음은 우리 딸도 알고 있을 테지.

그렇게 남들보다 더 예쁘고 귀엽게 키워 왔고 그게 전부인 줄만 알았는데 유감스럽게도 딸아, 너 뿐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줘야 할 게 우리 주위에 많이 있는 것을 몰랐으니 미안하다. 대문 밖에 한 발자국만 나서도 회오리 몰아치는 벌판이었지.

우리를 놀라게 했던 수많은 사건들, 그 중에서도 지난해 5월 17일 강남의 한 화장실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했던 너 또래의 그녀와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진 스무살 청년의 죽음도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했니?

그 중에서도 1,0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 없이 모든 진실을 들어 올리지 못한 세월호도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29일 1차 광화문집회를 시작으로 연인원 1,000만 명을 넘기며 분노로 2017년을 맞이하게 되었구다. 새해에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온통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정국이 슬프기만 한데 딸아, 우리는 결국 집안에서의 보호만 생각했을 뿐 울타리를 넘어가면 온통 바람모지인 것을 몰랐구나.

어른인 우리로서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많은 사건이 우리 딸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를 생각하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안타깝다.

너의 태명이 ‘푸른나라’였다. 너도 유아일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겠지만 엄마가 ‘푸른나라’라고 태명을 지은 이유가 있었단다.

80년대 정치적 격변과 민주화 투쟁기에서 젊은 날을 보낸 우리세대는 정치가, 정부가,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혁명가나 투쟁가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고 네가 생기자 아빠와 나는 우리아이들만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태명을 ‘푸른나라’라고 지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여전히 추운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딸아, 우리는 정치가, 정부가,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인 것 같구나.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는 막막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우리는 촛불을 들어 올렸다.

그 촛불을 들게 만드는데, 문제의 사건을 앞장서 파헤친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정론의 언론인이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것은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을 했기에, 어쩌면 이건 가장 기본적인 마땅함에 기초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졸업을 하고 이제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너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많고도 많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당부하고 싶다.

“너 한사람 쯤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까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너부터 정의와 신의로 살아가라”그러면 우리 사회는 더 밝아지지 않을까? 닭은 횃대에 올라가 새벽을 깨운다. 그 닭의 기상으로 2017년도 새롭게 깨어나기를 기원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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