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윷놀이도 고추 이식 때문에 바쁘다며 며칠 전에 다 끝냈다.
오늘 오전에도 동네사람 모두 모여서 오미댁네 고추이식을 해 놓고 경로당에 모인 것이다. 달뜨는 시간에 맞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기원제와 망월을 보며 각자의 소원을 빌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루떡을 찌고 돼지머리와 과일 등을 준비한 다음, 각기 한 가지씩 머리에 이고 들고, 남정네 몇 명은 풍물을 치며 달뜨는 시간에 늦지 않게 절골 너머 마을 앞산으로 향했다.
어른들 순으로 절을 올리고 그 때마다 돼지 입에는 지폐가 수를 더해가며 물려졌다.
나도 달을 보며 우리가정의 평안과 시아버지, 친정 부모님의 건강과 풍년농사를 빌었다.
한 시간에 걸친 기원제가 끝나고 다시 풍물을 두드리며 경로당으로 모였다. 동네사람이라야 남녀노소 다 합해서 사십 여명 되니까 가족적인 분위기다.
우리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 했던가?
그래서 그 한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낸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마을 사람들도 모이면 곧잘 가무를 즐긴다. 오늘도 예외 없이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고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나서 춤판이 벌어졌다.
육, 칠십대가 대부분인 그분들의 살아온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

그 얘기를 듣노라면 아주 먼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은데 놀라운 건 그 분들과 삼십대 중반인 내가 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시대 때 남편이 징용으로 끌려가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오신 진부골 할머니는 '한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로 시작되는 한오백년만 나오면 춤사위가 더 절절해진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를 넘어서 '청춘을 돌려다오'가 나오자 다리 아프고 허리 아파서 걷기에도 불편한 분들이 흘러가버린 청춘이 아쉬운 듯 온몸을 필사적으로 흔들어댄다.
땀인지 눈물인지를 쏟으며 흔드는 그 분들의 모습에서 왠지 내 어머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에서 막내인 나도 분위기를 맞추려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다시 또 노래는 '노새노새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를 지나 '내일은 내일 또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거야.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슬픔을 털어놓고 다 함께 차차차.....'로 넘어간다.
이 노랫말처럼 근심이나 슬픔을 털어버리고 그 분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를 한 다음 춤판을 마무리 지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름달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의 모습이 보름달처럼 눈에 들어온다.
달처럼 곱던 그 얼굴이 열 한 남매를 키우시느라 주름이 늘고 늙으셨지만 언제나 내 가슴속을 보름달처럼 비춰주시는 어머니...
어쩌면 어머니도 오늘 어머니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이 섞인 춤을 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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