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을 만난 지 사십여 년, 중년의 여인이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우주의 미아가 되어 방황할 때 혼자인 듯 외로워 내면의 사막으로 유폐될 때, 말없이 품어준 님, 수필이라는 등불을 들고 마중 나오셨습니다. 사람이 두려워 숨을 곳을 찾는 내게 자연이라는 화폭을 깔아 놓고 마음껏 채색하라 응원하셨지요” 
반숙자 선생의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소감 中     /편집자주

귀하신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17회 수필의 날을 맞아 4월 14일 ‘올해의 수필인 상’을 수상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수필문학의 위상을 높이셨던 흔적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수상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축하 말씀 감사합니다.
그냥 기뻤어요.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에서 수상자 선정 통보가 오던 날, 시골에 살면서 40년 동안 수필쓰기 외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인정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창작의 세계에서만은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시상식이 수필의 날이라 전국 수필가들이 모이는 자리여서 더 의미 있는 수상이라 새로운 다짐도 들었습니다.

선생님을 뵈면 순수한 소녀 같다는 느낌을 항상 받게 됩니다.
선생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각별한 일화가 있으시다면?
그리고 최근 근황은 어떠신지요.
어려서는 몸이 허약해서 반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아본 기억이 없어요. 병원에 가느라 결석도 많이 했지요.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해 일곱 살이라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무슨 생각인지 입학을 시키지 않았어요. 같은 마을 친구들은 입학해서 일본말을 배우는데요.
그해 8월 해방이 되고 반년 월반해서 입학을 했지요.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아서 앞 줄에 섰는데 담임선생님이 당신 호주머니에 집어 넣는다고 해서 무서워서 결석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융통성 없는 아이였나 봅니다.
 최근 근황은 20년째 이어 오고 있는 음성예총 창작교실에서 수필창작 강의를 하고요,
음성읍 주민자치 프로그램 ‘마음을 여는 수필교실’에서 강의를 해요. 가끔씩 외지 특강을 하며 하루하루 즐겁고 감사하게 살고 있어요.
마음이 아픈 이들이 수필을 쓰면서 치유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요, 그 기쁨과 보람이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3년째 연재하고 있는 청주교구 주보에 매월 두 편의 원고를 보내고 있는데요, 교우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영적 충만을 느끼며 살아요.
매주 금요일에는 여성회관에서 종이접기 공부를 해요. 손이 굼떠서 빠르지는 않아도 배워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선생님께서는 ‘때때로 격랑의 골짜기로 스스로를 유폐 시킨다’며 치유가 어려운 불치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어떤 대상에서 영감이 오면 거기 사로 잡혀 버려요.
그때는 신체의 오관까지 몰입해서 다른 것은 의미가 없어져요. 내적 어둠과 대결이고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지요. 그것이 창작의 한 과정이지만 스스로 느끼는 절대고독은 격랑과 다를 바 없어요. 그렇다고 명작을 창작하는 것도 아닌데요.
스스로 자초한 고통이니 기쁘게 지고 가야지요.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사과나무’ 등 선생님의 수필에 등장하는 ‘사과나무’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수필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쓴 시기가 197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때 농촌의 현실이 참으로 급박했습니다. 과수원을 하며 아이들 대학 공부를 시켜야 하는 우리 집 가장의 상징이 바로 사과나무였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농촌 부모들의 상징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물리적인 과수원이 아니라 내 안에 자라는 수 많은 사과나무를 발견했지요.
그것은 소망이었고 본질적인 탐구였고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지고한 삶의 의미였습니다.

선생님은 수필 속에서 ‘님’을 만나면서 매 순간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내 인생을 총괄해 보면 수필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삶의 내용과 질이 변화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개인의 아픔, 상처에 함몰되어 폐쇄적인 삶이었지요. 수필을 만나고 세상과 소통하고 살아갈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열정을 바칠 존재, 거울 같은 존재, 노력한 만큼 알아주는 존재를 만난 거지요.
문학이든 철학이든 존재 이유는 우리의 삶을 보다 기쁘고 진보하게 하는 효용성이 있습니다.
예술의 생활화를 내세우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소설의 생활화는 말이 안 되지요. 소설은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필은 자신의 삶을 근간으로 해서 체험과 사유의 결정체이니 삶을 분리할 수 없지요. 여기서 수필의 진가는 발휘됩니다.
즉 수필의 생활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출발한다는 명제가 확실해지는 겁니다.
작가와 글이 함께 성숙되어가기 때문입니다. 하여 수필은 나를 담을 그릇, 죽음까지도 동행할 동반자, 나를 나이게 하는 님 같은 존재입니다.
최종의 목표는 내 영혼의 안식처 하느님께로 가는 견인차이기도 합니다.

볼거리,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꿈꾸는 존재라고 하는데 좀 더 완성하고 싶은 꿈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의 가장 비참한 가난뱅이는 재력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꿈은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통로지요.
그런데 꿈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만족도가 물질적인 것으로 끝날 때는 더 큰 꿈 때문에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또 생깁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아서 입니다.
물질도 중요하지만 정신, 마음이 함께 하는 오래가는 꿈,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발화하는 그런 꿈이 필요하지요. 세상이 분열되고 충돌하는 것은 공통된 꿈의 결여 때문이 아닌가 해요.
함께 꾸는 꿈, 같이 행복해지는 꿈을 글을 통해서 이루고 싶습니다.

수필문학의 발전과 후학들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현재도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음성예총 창작교실에는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을 위한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예총 창작교실에는 거의 타 도시에 많게는 6,7년 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갈증이 크다는 증거지요. 배우고 싶지만 수필 교실을 여는 곳이 서울과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평택, 제천, 충주, 청주, 오송, 세종시등에서 옵니다. 이 분들은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분들이 아니고 글을 쓰다 보니 작가가 된 분들입니다.
그래서 등단을 하고도 계속 공부하러 옵니다. 참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지요. 글을 쓰며 서로 동기간 같은 정을 느껴 오는 것도 큰 이유이고 수필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나침반을 발견하는 의미도 크다고 합니다.
이 분들께 늘 강조하는 말이 행복한 글쓰기입니다.
글 쓰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기쁨임을 알자고 합니다.
수필창작을 통하여 삶을 성찰하고 사유하고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인간학을 함께 배우는 우리는 선택된 사람임을 잊지 말자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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