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가능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준다고?”

내가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지금도 상담을 하러 오신 분들이 간간히 묻는다.

사실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도 없이 후원금으로만 운영을 하고 몇 년째 꾸준히 후원금을 보내주는 분들이 존재한다니.

그리고 그런 곳에서 나는 올해 5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출근한 내게 상담실장님은 손바닥 크기의 ‘노동소법전’을 내밀었다.

맙소사, 애들 학교 보내고 방바닥에 누워서 킬킬대며 웹 소설을 읽거나 수다를 떨며 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법전이라니.

이 놈의 개미만한 글씨가 춤을 추며 ‘네가 과연 이걸 다 읽을 수 있겠니?’하고 나를 놀려댔다.

하루하루 이런 저런 근로기준법을 배우고 풀이했건만, 자고 일어나면 하얗게 지워진 상태로 출근 했다.

상담을 할 때면 각종 근로기준법 자료가 책상 위를 나뒹굴었고(물론 지금 내 책상도 그렇다) 상담실장님 찬스조차 없는 날은 상담자와 방문자 모두 머리를 맞대고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문제를 풀어갔다.

이건 이렇게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노동부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자, 왜 우리 회사는 법을 안 지켜서 우리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냐 성토하며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상담을 하러 온 이들끼리 서로 힘내자고 다독였고, 어떤 날은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들렸다는 이와 약간은 어색하게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다.

또 어떤 날은 근로기준법을 알리기 위해 주차된 차에 소식지를 끼워 넣었고, 현수막을 묶었다. 몇 개월 간 없는 자료를 만들어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음성군에 노동전담부서를 만들고 노동자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었고 상담실장님만 보면 궁금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물어보느라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 2일 음성노동인권센터의 내년도 활동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행사 ‘너의 목소리가 들려~♬’ 참석자들.

음성지역에서는 노동자들이 하소연 할 곳이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유일했고, 돈 걱정 없이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센터뿐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음성노동인권센터에 찾아왔다.

가슴 졸이며 고민하다 문을 두드리신 분, 사건이 종료된 후에도 인연을 이어가시는 분. 그저 센터 식구들이 잘 있나 궁금해서 오시던 분들의 흔적을 사무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일을 가지고 방문하는 이보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방문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힘에 부치기도 했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힘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말하지 못하고 꾸깃꾸깃 접어놓은 속마음을 조심스레 꺼내서 얘기하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후련하다 

말하는 분들이 있을 때마다 내가 조금 더 귀 기울여 듣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잠시나마 기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존재한다고 느낀다.

여전히 나는 상담이 어렵고 법이 어렵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할지, 내일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정리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 센터 활동을 하고 있다.

혹시나 잘못된 내용을 알려주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제발 모르는 내용을 나에게는 묻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간절함은 실장님 없이 나 홀로 사무실에 있을 때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센터의 활동이 즐겁다. 오랜 기간 가정주부로 살던 내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일이 새롭다.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일에도 내 스스로가 대견해 마구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 음성노동센터가 고맙다. 그래서 음성노동인권센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후원자들께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차장입니다. 2022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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