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6년 9월 당시 무극천주교회 오웅진 신부와 최귀동 할아버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지 47년이 지났다. 

“사람은 남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며 허름한 옷에 걸망 하나로 수많은 이들을 살려 내려 했던 최귀동 할아버지. 

그는 오웅진 신부로 하여금 꽃동네 설립의 단초를 마련한 ‘거지성자’였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 살린 그의 사랑은 이제 꽃동네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성자(聖者)가 된 걸인(乞人) 최귀동, 자신의 안구를 26세 젊은 청년에게 기증한 채, 지난 1990년 1월 지상에서 사랑의 삶을 마치고 천국에 올랐다.

음성타임즈는 지난 2019년 12월 발간된 ‘음성품바백서’를 토대로 7회에 걸쳐 기획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음성예술인들의 희생과 헌신 … 품바축제 탄생
② 품바의 근원과 음성품바축제의 태동
③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운명적 만남 Ⅰ· Ⅱ · Ⅲ
④ 품바축제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그리고 미래
⑤ 영상/ 사진으로 보는 품바축제 (1회~24회)/편집자주

(왼쪽) 최귀동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 (오른쪽) 지난 2021년 용담산 묘지 이장 당시 깊은 상념에 젖어있는 오웅진 신부.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당시 금왕 주민들을 통해 알게 된 최귀동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였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원명은 최경락(崔敬洛)이었다.

당시 귀동 할아버지의 집은 부유한 편이었고 금왕 읍내 시전 거리에서 쌀가게와 식당, 여행객들이 묵을 수 있는 객주집을 겸한 제법 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1917년 9월 10일 최귀동 할아버지가 태어나자 동네 사람들은 그를 귀한 집 아들이라 여겨 귀동이라 불렀고 이후 호적에는 경락이라 올렸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평생 귀동이라고 불렀다.

최귀동 할아버지가 태어난 장소는 지번 주소로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151번지로 현재 금왕 우체국 맞은 편 주택가가 그곳이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부친은 최성관(崔聖官)이었으며 본은 강화다. 모친은 김주홍(金株妅)이었다. 유복하게 자라던 최귀동은 당시 무극초등학교에 다녔으며 4학년을 끝으로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만 20세가 되던 1937년 4월 27일 신현분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결혼 후 혼인신고가 이루어졌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호적부. 호적부는 친척 최경자님이 1974년 만들었다.

청년 최귀동 강제징용 끌려가다

결혼을 하고 아직 신혼이었던 청년 최귀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에 끌려갔고 일본의 북쪽인 북해도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혹독한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최귀동은 탈출을 시도하다 잡혔고 이후 심한 고문과 노동으로 정신줄을 놓게 되고 폐인이 되었다고 한다.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최귀동은 일제에 의해 신의주로 가는 화물선에 충청북도 금왕이라는 꼬리표를 단채 실려졌다.

온전한 정신도 아닌 최귀동 할아버지가 어떻게 신의주에서 금왕까지 내려올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렵게 할아버지가 고향에 왔을 때는 집안은 와해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아무도 없었다.

부인도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인근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귀동 할아버지가 징용에 끌려간 후 집안사람들이 아편에 손을 댔고 그로인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병든 몸을 이끌고 돌아온 고향이었지만 귀동 할아버지는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다. 당시 금왕에는 할아버지의 사촌들이 살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거지들이 움막을 치고 살았던 무극다리 밑으로 갔다.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무극다리 밑에는 꽤 많은 걸인들이 거적으로 움막을 치고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2021년 용담산 묘지개장 현장을 찾아, 초기 꽃동네 사랑의 집에서 임종한 가족들의 묘소를 둘러보고 있다.

무극다리 밑 걸인들의 움막으로 들어간 최귀동

그리 크지 않은 당시 금왕에서 왜 그렇게 많은 거지들이 살고 있었을까? 그 의문의 답은 금왕의 금광에 있었다.

금왕은 예로부터 땅속에 금속이 많아 나침판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말이 주민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무극(無極)이란 지명이 생겼다는 말과 함께 구한말부터 금광이 시작되어 일제 강점기에 절정을 이루었고 1990년대까지도 미약하지만 금광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금왕에는 금광에서 일하고자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많았다. 당시 금광은 농사 보다 임금이 높았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열악한 갱내 환경은 늘 사고로 이어졌고 노동자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강박 속에 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 광산이 소재해 있던 금왕읍 용계리에서 봉곡리로 이어지는 신작로 옆에는 술집이 즐비했다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잊으려고 마시는 술, 질 낮은 담배로 인해 육체가 병들고 그로 인해 성격이 난폭해지면 가족들은 어디로든 떠나 갈 수밖에 없었다, 

알코올 중독과 결핵, 갖가지 폐질환으로 폐인이 된 광부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고 결국 행려병자가 되어 떠돌거나 무극다리 밑 움막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왕읍 무극리는 당시 금광으로 인해 돈이 많아 그곳에 가면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던 걸인들도 그 소문을 듣고 금왕으로 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말기 최귀동 할아버지가 스스로 찾아들어 간 무극다리 밑 움막은 이런저런 이유로 병든 몸을 이끌고 의지할 곳 없는 육신을 기댈 걸인들의 마지막 장소이기도 했다. 

(왼쪽) 1960년대 무극교. (오른쪽) 1980년경의 무극다리 밑.

최귀동 할아버지, 사망한 걸인들 용담산에 장사 치러

다리 밑에서 사는 행려병자들이 병이 깊어 사망자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행려병자가 죽으면 당시에는 가족이 아닌 시체에 손을 대면 부정 탄다는 관습이 있어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최귀동 할아버지는 헌 가마니를 구해 와 시신을 싸서 지게에다 지고 인근 용담산으로 올라가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시에는 용담산에 전쟁을 대비해 파 놓은 반공호가 많았다고 한다. 

겨울 언 땅을 팔 수 없었던 최귀동 할아버지는 주로 그 반공호에 시신을 묻었다. 

그렇게 최귀동 할아버지가 걸인들을 돌보며 산 40여 년간 얼마나 많은 걸인들의 장사를 치렀는지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기에 기억하지 못했었다.

꽃동네낙원 봉안당인 추기경 정진석 센터에서 봉행된 180여기의 무연고 유골 안치식.

오웅진 신부, 180여기 무연고 유골 꽃동네낙원에 안치

그런데 지난 2021년 5월 음성군의 ‘용담산 근린공원 조성사업’이 본격 시행되면서 용담산에 조성된 묘지이장이 시작됐다.

현장을 확인해 보니 무연고 묘지가 180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80여기의 무연고 묘지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오웅진 신부는 이 무연고 유골들을 모두 꽃동네낙원에 모실 수 있는 방법을 관계기관과 협의해 나갔다.

마침내 지난 9월 27일 180여기의 무연고 유골 안치식이 꽃동네낙원 봉안당인 추기경 정진석 센터에서 봉행됐다.

‘용담산 근린공원 조성사업’을 위한 행정 절차에 따라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180여기의 망자들이 꽃동네낙원 묘원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기획보도③>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운명적 만남Ⅱ 에서 계속됩니다.

지난 2021년 음성군의 ‘용담산 근린공원 조성사업’이 본격 시행되면서 용담산에 조성된 묘지이장이 시작됐다.

영상편집/유호성 기자. 글/고병택 기자  webmaster@e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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