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6년 9월 당시 무극천주교회 오웅진 신부와 최귀동 할아버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지 47년이 지났다. 

“사람은 남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며 허름한 옷에 걸망 하나로 수많은 이들을 살려 내려 했던 최귀동 할아버지. 

그는 오웅진 신부로 하여금 꽃동네 설립의 단초를 마련한 ‘거지성자’였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 살린 그의 사랑은 이제 꽃동네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성자(聖者)가 된 걸인(乞人) 최귀동, 자신의 안구를 26세 젊은 청년에게 기증한 채, 지난 1990년 1월 지상에서 사랑의 삶을 마치고 천국에 올랐다.

음성타임즈는 지난 2019년 12월 발간된 ‘음성품바백서’를 토대로 7회에 걸쳐 기획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음성예술인들의 희생과 헌신 … 품바축제 탄생
② 품바의 근원과 음성품바축제의 태동
③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운명적 만남 Ⅰ· Ⅱ · Ⅲ
④ 품바축제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그리고 미래
⑤ 영상/ 사진으로 보는 품바축제 (1회~24회)/편집자주

한국가톨릭 봉사대상을 수상한 최귀동 할아버지의 상금이 기초가 되어 준공된 꽃동네 노인요양원 준공식 날. 엄청난 인파가 참석했다.

“애들 다쳐” … 자루엔 깨진 유리조각 · 사금파리 한가득 

최귀동 할아버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동냥깡통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한 쪽 어깨에 메고 다니던 큼지막한 자루가 있었다. 그 자루 속에는 깨진 유리병이나 조각, 사금파리 깨진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지금은 응천 주변이 정리되어 주차장과 꽃밭으로 가꾸어져 있지만 1980년대까지는 아이들이 뛰어놀던 넓은 공터였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노는 곳 주변을 돌며 유리병 깨진 것이나 날카로운 사금파리 조각들을 주워, 메고 다니는 자루에 담아가곤 했다. 

어느 날은 주민들이 물어보았다고 한다. “귀동이, 그거 뭐 하러 주워가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애들 다쳐” 하셨다고 한다.

금왕읍 무극리 주민들 중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걸인이었지만 길가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빈 깡통을 들고 자신들의 집을 찾아오면 남은 밥을 기꺼이 내 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76년 용담산 아래 사랑의 집.

걸인들, 무극다리 밑에서 쫓겨나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주도 아래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무극천 다리 밑에 살던 걸인들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는 사람들 보기에 다리 밑의 움막도 그렇고, 거지들의 모습도 보기 좋지 않으니 나가라는 것이었다. 다리 밑을 유일한 주거지로 삼고 살아가던 거지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걸인들은 용담산 뒤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움막을 옮겨 생활하게 됐다.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최귀동 할아버지의 삶은 변함이 없었다. 세상은 경제가 나아지며 윤택해져 갔지만 움막 걸인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남은 밥을 얻어와야 움막 속에 누워있는 걸인들을 먹일 수 있었고, 움막조차 없는 떠돌이 걸인들이 병들어 길에서 쓰러지면 할아버지는 여지없이 움막으로 업고 왔다.

초기 사랑의 집 가족들. 왼쪽 첫 번째 최귀동 할아버지도 있다.

최귀동 할아버지, 오웅진 신부를 만나다

1976년 9월 12일 무극성당 오웅진 신부가 움막을 방문했다. 다음날부터 오 신부는 틈만 나면 매일같이 움막을 찾아왔다. 그리고 집을 지어주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오 신부가 움막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용담산 자락에 부지를 정리하고 시멘트 블록을 찍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동냥밥을 얻으러 다녔다.

1976년 11월 갑자기 찾아온 이른 한파에 집은 완성됐고 최귀동 할아버지를 비롯한 18명의 걸인들은 방 다섯 칸, 부엌 다섯 칸의 새 집에 입주하게 된다. 특별히 그 집 이름을 지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 집을 ‘사랑의 집’이라고 불렀다.

걸인들은 처음으로 벽돌로 지은 따뜻한 방안에서 생활을 시작했지만 할아버지는 이후에도 여전히 깡통을 들고 동냥밥을 얻으러 다녔다. 할아버지의 동냥 생활이 막을 내린 것은 1980년 초 동냥밥을 얻어 들어오다 용담산 입구 고물상 앞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1983년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 맹동면 현 부지 첫 건물인 본동이 뒤에 보인다.

“세상 누구보다도 고귀한 삶을 살아오신 분”

1980년 2월 18일 최귀동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오 신부가 급히 달려와 보니 할아버지는 이미 혼수상태였고 반신이 오그라들고 있었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위증한 상태였다.

급하게 무극의 한 병원의 의사를 불러 진료를 하니 의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오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이 사람이 귀하게 산 사람이었으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지금 이만큼 숨이라도 붙어 있는 것은 평생을 천하게 살았기에 아직 살아 있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오 신부는 속으로 말했다. “의사 선생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 분이야말로 세상 누구보다도 고귀한 삶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귀동 할아버지야말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의인 중에 의인이며 평생 사랑의 삶을 살아오신 분입니다”라고.

오웅진 신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수원의 성 빈센트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무극에 응급용 구급차가 없었기에 오 신부는 낡은 승용차에 태우고 손수 운전을 하여 급하게 입원을 시켰다. 귀동 할아버지가 얼마 전 죽어가던 여인을 업고와 입원시켰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무극의 의사는 회복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기적처럼 안정되어 갔고 얼마 후에는 의식도 되돌아 왔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반신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기 시작했다.

초기 사랑의 집 가족들과 오웅진 신부. 무극성당 수녀.

뇌졸중에서 회복한 할아버지, 사랑의 집으로 돌아오다

최귀동 할아버지가 퇴원하여 무극성당 사제관으로 왔다.

그러나 사랑의 집으로 가서 살기에는 한 쪽 팔다리가 불편했고 오웅진 신부는 우선 사제관으로 할아버지를 모셨다. 이 후 오 신부는 무극에 살고 있던 사촌들에게 연락을 했고 그들은 할아버지를 자신들의 집으로 모시고 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촌들의 집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고 며칠이 못되어 다시 사랑의 집으로 돌아간다.

사랑의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이내 안정을 되찾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부터 봉사자들이 찾아오며 할아버지와 몸이 불편한 걸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사랑의 집에는 스스로 찾아오는 행려자들과 거리에서 죽어가는 행려자를 만나면 오웅진 신부는 자신의 낡은 자동차에 그분들을 모셔왔기에 얼마가지 않아 더 이상 사람을 받기 어려웠다. 

오웅진 신부는 무극성당 인근과 용계리에 농가주택을 매입해 수리하고 우선 결핵환자들을 치료하며 맹동면에 부지를 마련하여 새 집을 짓기 시작했고, 1983년 9월 8일 마침내 현대식 건물을 짓고 준공식을 가졌다. 

건물 이름은 지을 겨를도 없었고 사람들은 그 집이 가장 좋고 큰 건물이었기에 ‘본동’이라고 불렀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본동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 집 이름은 사랑의 집으로 지어졌으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본동이라고 부른다.

한국가톨릭 봉사대상을 수상하고 무극시내에서 축하행진을 하는 최귀동 할아버지.

최귀동 할아버지, 한국가톨릭 봉사대상 수상

1986년 12월 15일 최귀동 할아버지는 ‘우리가 찾은 작은 예수’라는 호칭으로 ‘한국 가톨릭 봉사대상’을 수상했다. 명동성당에서 이루어진 수상식장에서 할아버지는 당시 서울교구 주교로부터 상패와 함께 상금 120만원을 수여 받았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가톨릭 대상 수상을 기뻐하며 무극성당에서는 오웅진 신부와 신자들이 큰 잔치를 열었다. 잔치에는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진석 주교(훗날 한국 두 번째 추기경이 된다), 도지사, 국회의원 등 수 많은 내빈들이 참석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잔치가 열리던 날 소방 지프차를 빌려 무극시내를 돌며 축하 퍼레이드를 펼쳤다. 많은 무극 주민들도 도로에 나와 할아버지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한국가톨릭 봉사대상 수상 축하잔치에서 내빈들과 함께 한 최귀동 할아버지.

축하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오웅진 신부는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축하해 주기 위해 오셨어요. 할아버지가 받은 상금이 있는데,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길에서 죽는 사람들 집 지어줘”

최귀동 할아버지가 가톨릭 대상으로 받은 상금 120만원, 그 돈이 밑바탕이 되어 꽃동네에서는 구원의 집을 짓기 시작했고, 일 년 후 1,200여 평의 집이 완공되어 준공식 행사가 열렸다. 

준공식에는 당시 추산으로 10만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오지에 속했던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영상편집/유호성 기자. 글/고병택 기자  estimes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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