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 조병옥 음성군수의 화룡점정/제공=음성군청.

고병택 기자.

음성군 내 무형자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전통문화예술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제42회 설성문화제가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음성읍 설성공원 일대에서 개최됐다.

지난 1982년 시작된 설성문화제는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군민과 함께 하는 유서 깊은 향토문화축제로, 그만큼 군민들의 애정도 깊다.

2020년, 2021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2년 연속 열리지 못하는 파행도 경험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병행 개최됐던 청결고추축제와 분리되어 단독 축제로 추진됐으나, 새로운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면서 결국 취소되는 등 난항을 겪기도 했다.

설성문화제의 정체성을 되찾자는 군민들의 여망이 외부로 표출되면서 축제 전반에 대한 재진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설성문화제의 재정립 및 발전방안 모색을 위한 콘텐츠 개발 연구용역’이 실시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19일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갖는 등 향토문화축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제42회 설성문화제’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이유이다.

염계달 명창기념 음성판소리잔치 공연 모습/제공=음성군청.

대한민국 판소리·승무 거장들, 행사 대미 장식

제42회 설성문화제는 ‘음성, 문화와 예술을 잇다’라는 주제로 첫째 날 ‘터울림의 날’에는 음성문화원 동아리 공연을 시작으로 음성군립청소년오케스트라 공연, 개막식, 상상대로 음성 전국 가수왕 선발대회가 펼쳐졌다.

둘째 날 ‘음성소리의 날’에는 서경덕 교수의 ‘한국 문화와 역사 홍보, 왜 중요한가?’를 주제로 한 초청 특강, 실버가요제, 충북무형문화재 이상래 시조창 공연, 퓨전 여창가곡 및 국악연주, 경기서도민요, 힙합과 시조창의 콜라보, 미스트롯 김다현 공연 등이 이어졌다.

셋째 날 ‘세계문화의 날’에는 남미 삼바  ·중국 기예단 · 멕시코 인디언 전통음악 · 러시아 전통 민속공연과 다문화 가족이 고국의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글로벌페스티벌 등이 준비됐다.

마지막 날인 15일 ‘전통문화의 날’에는 음성의 전통 민속놀이를 시연하는 음성민속예술한마당이 펼쳐졌다. 길놀이를 시작으로 전통혼례, 나무꾼소리, 상수연, 삼성향악단의 지경다짐이, 각골줄다리기 등이 시연됐다.

저녁에는 음성 가섭사에서 득공한 염계달을 추모하는 ‘염계달 명창기념 음성판소리잔치’가 대한민국 판소리계 대표 거장들이 대거 출연한 가운데,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밖에 문방사우 명인·명장 기획전, 장승제작 시연, 시화전과 트릭아트, 포토존 등이 설치됐다.

주요 이벤트성 행사로는 전통놀이, 소원등 달기, 동심편주, 음성군OX퀴즈, 고추장떡볶이만들기 등이 선을 보였다.

개막식 모습/제공=음성군청.

한산했던 행사장, 원인은 무엇일까?

이번 설성문화제는 추진 과정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지적과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역사도시 음성군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주력해야 할 축제가 이벤트성 행사에 편승하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셋째날인 ‘세계 문화의 날’ 행사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음성군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제36회 음성군민 체육대회’와 중복되면서다.

“한 명의 주민이라도 더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하는데, 양 쪽으로 주 행사가 분리되면 참여인원의 분산은 자명한 일이다. 정상적인 행사 진행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나왔던 이유이다

이 같은 우려가 모두 기우이기를 바랬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개막식을 제외하고는 행사장 곳곳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등 관객동원에는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9~10월 두 달간 관내에서 각종 축제 및 행사가 연거푸 열리면서 누적된 ‘행사 피로도’가 큰 문제로 부각된다. 수확철을 맞은 농촌의 여건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인근 지자체 축제와 일정이 겹치면서 외부 방문객이 분산되는 악재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같은 시각에 개최되는 ‘음성군민체육대회’는 향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축제 기간을 3일로 줄이더라도 별도 개최되어야 한다는 제언이다.

체육대회에 대비한 9개읍면의 종목별 연습, 경기 후 피로도 등을 감안하면 이들의 설성문화제 참여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날씨마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주말 오전에 열리는 일부 주행사의 시간 변경도 고려 대상이다.

또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여타 축제에서 경험했던 것과 유사해 식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설성문화제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젊은세대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도 필요해 보인다. 

각골줄다리기 시연 모습/제공=음성군청.

‘음성, 우리만의 것’ … 설성문화제를 위한 고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설성문화제는 앞으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는 몇 가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선, 행사장 곳곳을 누볐던 담당 공무원들의 땀과 열정이다. 설성문화제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이들의 노력과 역량은 마지막 ‘전통문화의 날’에 그 빛을 발했다.

이상래 시조창, 나무꾼소리, 상수연, 지경다짐이, 각골줄다리기, 염계달 명창기념 판소리잔치 등은 타 지자체 행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설성문화제만의 고유의 것이었다. 

비록 고가의 유명가수는 없었지만, 대한민국 대표 판소리 명창 · 승무 이수자 등 국악계 거장들의 공연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설성문화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뚝심이야말로 설성문화제의 정체성을 지키고 ‘음성, 우리만의 것’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관객부족이라는 비판에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전국적인 축제의 홍수 속에 살아남는 길은, 결국 우리 고유의 것을 지키는 일이다. 

외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전통축제를 보기 위해 수 만명의 외지 방문객이 몰려드는 현장이 TV에 소개되기도 한다. 축제에 녹아있는 그 마을주민들의 자긍심과 함께.

지경다짐이 시연 모습/제공=음성군청.

설성문화제는 2~3달 준비하는 깜짝행사가 아니다. 음성의 전통문화를 발굴 · 계승하는 작업이 1년 내내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행사를 통해 공개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주민참여는 덤이다.

이에 따른 예산 확보는 필수이다.

특히 음성문화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9개 읍면 주민자치회와 유사한 프로그램에서 탈피해야 아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음성문화원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향토문화에 대한 소양과 전문성을 먼저 갖춰야 한다. 설성문화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음성문화원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종편제 시조 염계달은 음성 가섭사에서 10여 년에 걸친 사료 수집과 고증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그 결과 동편제, 서편제에 이어 대한민국 판소리계의 판도를 바꾸어 내는 성과를 거뒀다. 

전통문화를 지키고 후세에 남기는 일은 그만큼 지리하고 험난한 여정이다.

내년 설성문화제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올까?

음성군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병택 기자  webmaster@e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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